[특별기고] 우리 법원의 결정장애 증후군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ted is justice denied)라는 법률 격언의 의미가 퇴색해져서 자유민주주의 법질서가 무너져내린 우리나라의 사법부는 결정장애증후군을 극복하여 범죄인이 정치의 무대에서 활동하는 상황을 하루속히 끝내야만 한다.

석동현 국민희망저널 상임고문 승인 2024.10.21 16:49 의견 0

석동현 상임고문
변호사,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전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대법원 입구에 새겨진 자유, 평등, 정의 ⓒ연합뉴스

시간은 금이다. 국가가 배타적 주도권을 가진 사법(司法)절차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정의, 다시 말해서 국민들이 바라는 정의는, 그 내용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때, 즉 적시성이다. 정의를 구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좋은 일도 시간이 늦어져서 적절한 때를 놓치면 소용이 없게 된다 .
소송을 제기한 입장이나 재판을 당하는 입장, 또는 그 재판의 결과에 따라 권리이익에 영향을 받는 입장 모두 그 재판의 결론이 ‘적정한 시점’까지 내려져야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결론의 내용에 관계 없이 권리이익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불만만 남게 된다. 판관은 자신이 내린 결론에 만족할지 모르나 당사자는 모두가 패자 혹은 권리이익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법률 격언인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말은 바로 그런 뜻을 담고 있다. 우리 헌법에 기본권의 하나로 규정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역시 본질적으로 그런 격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그런 격언의 1차적 수행임무는 누구에게 있을까? 두말할 필요 없이 법원이고 재판의 전권을 가진 판사들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빨리 빨리가 아니라 ‘적기에, 적절한 시점에’ 재판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판사의 의무이고 우리가 사법부의 독립과 판사에 대한 사회적 존경을 거론하는 본질적 이유다.
물론 판사에게 적절한 시점까지 재판의 결론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판사 본인의 수고 외에도 맡은 재판 업무량의 조절, 재판 당사자와 그 대리인의 역할이나 의무 이행, 재판에 필수적인 증거와 감정등 판단자료의 차질없는 현출, 재판결과에 대한 편향적 비난과 공격의 자제를 비롯한 여러 필수적인 요소들이 더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적절히 관리하면서 재판을 결론까지 진행하는 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법원(판사)의 권한이며 책무다.
그런데 갈수록 부당하고 부적절한 재판 지체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일부 현역 정치인들의 재판 지체사례는 그 부작용이 도를 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 사회에서 지난 5~6년 동안 가장 부정적 화제를 몰고 다닌 사람 중의 하나이며, 말과 실제 언행이 완전히 상반되어 ‘조적조’가 늘 따라다니는 현직 국회의원이자 조국혁신당 대표인 조국의 형시 재판 사례이다. 그는 금년 4월에 실시된 총선을 불과 두달 앞둔 지난 2월, 2심법원 재판에서 1심과 동일하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형사피고인 신분으로 총선에 출마하여 당선까지 되었다.
민사재판보다 훨씬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형사재판 1, 2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고도 재판부가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법정구속을 하지 않은 점을 틈타, ‘비법률적 방법으로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총선에 비례대표후보로 출마한 것이다. 이는 법원의 판결을 완전히 조롱하고 능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선거 다음 날이라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면 선거에 당선이 된들 그 당선은 무효가 되고 국회가 아니라 교도소로 들어가야 하는 몸으로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정당을 만들어 당 대표가 되고, 당선이 되자 비교섭단체 대표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하고, 그 연설에서 대통령 부부를 조롱하기도 했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사법절차, 선거제도, 정당제도가 가동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이다. 그럼에도 그가 제기한 상고에 대한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이미 늦었다. 어쩌면 이재명도 조국의 사례를 보면서 피고인 신분으로 다음 대선에 당당히 나설지도 모른다.
나는 조국의 사례를 보면서 형사소송법, 정당법, 정치학 교과서를 전부 다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뿐인가.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선고를, 그리고 일반 형사범죄로 금고 이상의 선고를 받은 사람은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출마 자체를 못할 뿐 아니라 당선 후에도 그런 판결을 받게 되면 즉시 당선무효가 된다.
그런데, 총선을 불과 2개월 앞둔 2심 선고에서 1심과 똑같이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은 형사 피고인이 대법원에 상고해 놓고 총선에 출마해서 당선된 뒤 대법원의 확정판결시까지 의원직을 누리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그렇다면 그런 공직선거법도 역시 허점 투성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문제많은 법들을 고치는 데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비법률적 명예회복’ 수단으로 정치가 악용되는 것을 막고 조속히 정의를 세우는 ‘법률적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대법원이 하루 빨리 상고심 판결을 선고해서 그 판결을 확정하는 길뿐이다.
이미 우리는 대법원의 결정장애 즉, 확정판결의 선고지연으로 윤미향 같은 중대 범죄자가 4년의 국회의원 임기를 거의 다 채우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의 병증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법원도 이런 결정장애 증후군을 스스로 시급히 치료하지 않으면, 조국 같은 꼼수 상고인들이 사법 방해는 물론 국가기능까지 마비시켜 자유민주주의와 법질서의 숨통이 끊어질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국민희망저널 2024년 10월호 (제17호) 특별기고 | 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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