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통일인가?
어느 유명 정치인이 2012년에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발언하자 상당수 국민들도 이에 동조하면서 한동안 우리사회에 진짜 간첩이 없어진 줄 알았다. 그러나 지난 1월 제주도에서 발각된 한길회 간첩단 사건이 있었고, 5월 10일에는 검찰이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고 노조 활동을 빙자해 북한의 지령을 수행해 온 민주노총 전직 간부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였다. 간첩이 암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대한민국의 국운이 상승일로에 있다. K-POP은 이미 세계를 강타했고, K-방산이 우크라이나전쟁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이제는 K-우주도 힘을 내고 있다. 대한민국이 경제로는 세계 10대 강국, 군사 6대 강국, 문화강국이 되어 있으나 아직도 주변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주도권 확보가 어려운 것은 별 변화가 없는 듯하다. 이는 최근 주한중국대사 싱하이밍의 오만방자한 행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국력이 상승일로에 있으나 국내에서 이념 갈등은 계속되고 주변 강대국에 주도권 발휘가 어려운 상황을 타파하는 길은 무엇일까? 바로 자유민주통일이 답이요, 통일 강대국이 나아갈 길이라고 본다. 이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통일사례는 어떤가?
남북통일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21세기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통일한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자. 합의통일 후 무력 통일한 예멘, 흡수통일한 독일, 무력 통일한 베트남이 그것이다.
첫째, 예멘은 오스만제국과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북예멘과 남예멘으로 분리하여 납북으로 대치하다가 1990년 5월에 남북 합의로 북예멘이 자유민주체제로 흡수하여 통일국가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북예멘의 지배 세력들은 남예멘과 대등한 합의통일에 완강히 반대하였으며 민주화가 미숙한 남예멘은 통일예멘을 북예멘이 장악하자 내전을 일으켰다. 이에 1993년 북예멘이 남예멘을 무력으로 재통일하게 된다. 이후 2004년에 무장단체 후티가 예멘 서북부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켜 내전을 치르다가 올해 4월에 본격적인 평화 협상을 시작하였지만 종전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예멘은 합의통일과 무력 통일을 동시에 경험한 사례로서 30여 년이 소요된 예멘의 통일에서 국민적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통일은 사회통합에 한계가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둘째, 독일은 2차대전 패전이후 동서로 분할되었으나 통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1969년까지는 동서독의 분할 및 긴장 형성기로서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는 등 긴장이 고조되었으나, 1969년 10월에 취임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신동방정책으로 화해 협력의 기틀을 만들었고, 이어 1982년에 콜 총리가 취임하여 1987년 6월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통일 호소, 소련 고르바초프의 화답으로 통일의 기운을 만들어 나갔다. 특히 콜 총리는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80여회 회담하면서 부단히 신뢰를 쌓아갔고, 통일독일의 등장을 완강히 반대하던 영국의 대처 총리까지 설득하여 드디어 1990년 10월 3일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여 평화통일을 이루었다. 통일을 향한 국가지도자의 집념과 역할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사례이다.
셋째, 베트남은 3차례의 전쟁 끝에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한 사례이다. 제1차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1954년 베트남이 승리하였다. 이후 미국-남베트남군과 호찌민의 북베트남군의 20년에 걸친 제2차 베트남전쟁 끝에 1973년 1월 파리 평화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하면서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러나 남베트남에 공산당원이 잔류하며 내부 갈등과 분열을 이어가다가 결국 북베트남군의 총공세로 제3차 통일전쟁이 발발하여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은 공산화 통일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110만여 명의 보트피플의 비참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력 통일 후 사회통합과 경제발전이 어려워지자 1986년 도이머이정책으로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해 경제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 통일은 국민이 원하는 경제발전을 할 수 없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3개국의 통일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원만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선 통합작업을 통해 주변국의 동의를 얻어나가고 당사자 국가 내 각 이익집단의 이해를 조정하며 국가지도자가 통일 달성을 위해 집념을 갖고 설득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왔나?
우리는 분단 이후 남북한이 각자 통일을 국가 목표의 하나로 삼고 일련의 통일정책과 통일방안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식과 통일 이후의 국가설계에 대한 통일미래 비전 등에 큰 차이가 있었다. 남북한이 추진한 주요 통일정책은 다음과 같다.
이승만 정부는 유엔감시 하 통일, 북진통일론을 주장하였으며 이에 북한의 김일성은 북한 민주기지론과 무력 적화통일론으로 대결하다가 1960년에 남조선혁명 수단으로 남북 연방제를 최초로 제안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선 건설 후 통일론으로 경제건설에 치중하였으며 김일성은 1973년에 고려연방제를 주장하였다.
전두환 정부는 1982년에 민족화합 민주 통일방안을 제시하였고, 노태우 정부는 1989년에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하였으며 이에 북한은 1991년에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를 주장하였다. 이어 김영삼 정부 때부터 노태우 정부가 주장한 안을 기초로 1994년에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하여 1민족 1국가 체제를 제시하였다.
이후 북한 김정일 정권은 2000년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 김정은 정권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남북한은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통일정책을 제시하였으나 주변국 동의와 지지 없이 남북 대화만으로는 통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위와 같이 남북한은 서로 다른 통일방안을 주장하여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변함없이 남조선혁명론을 기조로 하고 있다. 2021년에 개정한 노동당 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을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이라는 용어로 변경했을 뿐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의 저의는 차후 연방 대통령을 선출할 때 단일후보로 출마할 북한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주장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특히 김정은은 연방제 선결 조건으로 외세 의존 정책 포기, 미군 철수 의지 표명, 외국 군대와의 합동군사연습 영구 중지, 미국의 핵우산 탈피 등 4가지 사항을 제시하고 있어 통일방안의 진정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한편 우리 국민은 통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2021년 7월 실시한 ‘2021년 통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필요하다(매우 필요하다+약간 필요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44.6%였다.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률은 2007년 63.8%를 기록한 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모두 50%대에 그치다가, 2021년에는 처음으로 50%대 미만을 기록한 것이다.
또한 통일부·교육부가 2022년 2월에 실시한 「2022년 학교 통일교육 실태조사」에서 통일이 필요 없다고 응답한 초·중·고생이 2020년 24.2%, 2021년 25%에서 31.7%로 올라가는 등 젊은 세대의 통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낮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한국의 역대 정부,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을 돌이켜 보면 통일·대북 정책은 정권과 통치이념에 많이 좌우되어 왔다는 것도 한계이다. 지속 가능한 통일 대북 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결언, 어떻게 할 것인가?
수십 년간 남북이 대립하고 심지어 국가 내에서도 이념 갈등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남북통일을 추진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더욱이 통일이 필요하다는 국민의 인식이 낮아지고 있고 북한은 연일 미사일 발사 도발을 강행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통일 문제를 방치만 할 것인가?
평화통일을 이룬 독일의 교훈을 보면 국가지도자의 집념과 추진력이 절대적임을 알 수 있다. 남북한은 지금껏 통일을 주장하였지만 각자 진정성이 부족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남북통일을 논의하고 하나씩 준비해 나갈 때이다. 더 늦어지면 더욱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통일한국의 발전상에 대한 비전 제시와 교육, 홍보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통일한국의 자유민주주의 가치, 분단비용과 통일효과를 국민에게 이해시키고, 주변국에 동북아 번영에 필요함을 설득하며,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함을 설득해야 한다.
둘째, 통일 당사자인 남북의 협력을 강화하고 대화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인내를 갖고 강한 국력과 군사력을 기초로 북한을 대화로 끌어들여야 한다.
셋째, 한반도 주변의 4개국을 포함하여 국제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예멘의 경우 소련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양보가 있었기에 통일할 수 있었고 독일은 미·소·영·불 4개국의 합의와 지지가 있었기에 통일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도 국가지도자의 결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넷째, 통일의 선봉대를 키워야 한다. 북한 이탈주민을 잘 대우하여 통일 전사로 육성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들을 통일의 전문가로 육성하여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통일을 주도할 미래세대를 적극적으로 양성해 나가야 한다.
다섯째, 통일 관련 법적, 제도적 정비를 해야 한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단계별 법과 제도를 준비하고 육해공군의 군사통합준비도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만 치중해 온 대북 정책의 관행에서 벗어나 궁극적 목표인 평화통일을 위한 정책과 평화통일을 향한 국내외적 공감대 형성을 균형 있게 추진하고 있다. 올바른 방향 설정이다. 부디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에 대한 준비도 잘하여 역사에 통일 대통령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국민희망저널 2023년 7월호 (제2호) 전문가 초대석 | 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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