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정신 (2)] 삼국시대의 상무정신 기록과 역사적 사례 국가와 민족을 위한 헌신과 도덕적 책임의 상징

삼국시대는 한국 역사에서 군사적, 문화적 격변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세 나라는 각자의 독특한 문명과 전통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패권을 다투며, 각각 고유의 상무정신을 발전시켰다. 이 상무정신은 단순히 전쟁에서의 승리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한 도덕적 책임과 헌신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김칠주 편집위원 승인 2024.09.16 17:48 | 최종 수정 2024.09.16 17:52 의견 0

삼국 전성시대 지도(출처 : 두산백과)

삼국시대, 고구려는 북방의 강국으로서 끊임없는 외침에 맞서 싸웠고, 백제는 서남쪽에서 문화적 번영과 군사적 강함을 동시에 추구했으며, 신라는 고립된 위치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삼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이루어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각국의 전사들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고, 이들의 상무정신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시대의 상무정신을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 백제의 싸울아비(싸울阿比), 신라의 화랑(花郞)을 중심으로 그들이 어떻게 나라를 지키고, 영토를 확장하고자 했던 뜨거운 마음과 헌신을 보여주었는지, 특히 각국의 번성기였던 고구려 광개토대왕, 백제의 근초고왕, 신라의 진흥왕 시대를 대표적으로 논의하겠다.

고구려시대의 상무정신 기록과
조의선인의 상무정신 사례

고구려는 넓은 영토와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고구려의 전사들이 보여준 상무정신 덕분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중국의 《위서/魏書》, 《삼국지/三國志》등의 사서에 따르면, 고구려의 군사적 역량과 용맹함은 적국들마저 두려워할 정도였다. 고구려 병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조국을 위해 싸운다”라고 평가받았는데, 이는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대표하는 집단은 바로 조의선인(皂衣仙人)이다. 이들은 ‘검은 옷을 입은 신선 같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고구려의 엘리트 전사 집단을 일컫는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는 “其勇猛而訓練甚嚴, 故每有外敵, 皂衣仙人必先登陣 - 조의선인들은 엄격한 훈련으로 용맹하였으며,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선봉에 서서 싸웠고, 그들은 철저한 군사적 준비로 적들을 물리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의선인은 단순한 전투병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사들로 그들의 훈련은 혹독하고 엄격함에서 요망함이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위서》동이전(東夷傳)에는 “其兵勇悍, 不畏死, 唯忠於國 - 고구려의 병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조국을 위해 싸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의 왕들은 조의선인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으며, 이들은 국가의 존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명예로 여겼다. 그들의 상무정신은 고구려가 수많은 외적의 위협 속에서도 굳건히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고구려의 제19대 광개토대왕(재위 : 391년~ 413년)은 재위 기간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어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에서 강력한 국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중국 지린성, 중국학 위키)


광개토대왕비문에는 평소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나타내는 글귀로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靡不如風 驅虎蕩貔 開拓四方 恢廓九壤 - 바람처럼 모든 곳을 휩쓸고, 호랑이와 맹수들을 몰아내어 사방을 개척하고, 아홉 개의 땅을 넓혔다.” 이 글귀는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군사적인 용맹과 영토 확장의 의지를 강조하면서 광개토대왕이 고구려의 국력을 크게 확장한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고구려의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강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비문에 나오는 원문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勇而不怯, 常勝將軍 - 용감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항상 승리하는 장군” 이 부분은 광개토대왕과 그의 군대가 용맹하고 두려움 없이 싸워서 항상 승리했음을 강조하는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기록들은 고구려가 군사적으로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해 준다.

백제시대의 상무정신 기록과
싸울아비의 상무정신 사례

백제는 한반도 서남쪽에서 강력한 문명과 군사력을 구축하며, 상무정신을 기반으로 한 나라의 번영을 이루었다. 백제의 상무정신은 싸울아비(싸울阿比)라는 전사 집단을 통해 구현되었다. 싸울아비는 이름 자체가 ‘싸움을 잘하는 사람’으로서,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군사 교육을 받으며, 나라를 지키는 책임을 다해 왔다.
《수서》(隋書) 동이전(東夷傳)에는 백제의 전사들에 대해 “臨陣不退, 唯保國而亡 - 전투를 앞두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며, 오직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싸울아비들은 백제의 국방을 책임졌으며, 그들의 존재는 백제의 군사적 역량의 핵심이었다. 백제는 주로 서남쪽의 바다를 통해 외부와 교류하며, 문화적, 군사적으로 번성했다. 싸울아비들은 이러한 백제의 힘을 지탱하는 주축이 되었으며, 전투에서의 용맹함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백제를 지켰다.
싸울아비들의 상무정신은 단순한 전투 기술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백제 사회에서 도덕적 모범으로서 존경받았으며, 그들의 헌신은 백제 국민들에게 깊은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용맹과 헌신은 백제가 적들 사이에서 강력한 국가로 자리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싸울아비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백제시대에 상무정신이 가장 강했던 시기는 근초고왕(재위 346~375년) 때인데, 《삼국사기》 백제 본기 근초고왕 조에 나오는 상무정신과 관련된 주요 원문과 해석은 다음과 같다. “九年, 王躬率水軍, 攻陷平壤城, 殺儲君然後, 爲勇敢, 天下莫當. - 재위 9년(서기 369년), 왕이 친히 수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고구려의 태자(고국원왕의 아들)를 죽였다. 용맹함을 떨쳐 천하에 당할 자가 없었다.” 이 내용은 근초고왕이 군사적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둔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그의 강한 상무정신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신라시대의 상무정신 기록과
화랑의 상무정신 사례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성장한 나라였지만, 결국에는 삼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이루어냈다. 이 과정에서 화랑도(花郞徒)라는 조직이 큰 역할을 했으며, 이들은 신라의 상무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집단이었다. 화랑도는 단순한 군사 조직이 아니라, 신라의 젊은이들이 도덕적 수양과 무예를 연마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었다.
《삼국사기》신라본기(新羅本紀)에는 “花郞徒, 其志存國, 不惜死 - 화랑도는 나라를 위해 싸우며,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된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화랑들은 전투에서 선봉에 서서 싸웠으며, 그들의 용맹과 도덕적 완성은 신라 사회의 중요한 요소였다. 화랑들은 전장에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며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국립중앙박물관소장,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유신 장군은 화랑도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의 지도력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삼국사기》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에는 “庾信以花郞之志, 戰必勝, 其勇氣及忠心, 使新羅爲三國之覇 - 김유신은 화랑도의 정신을 바탕으로 전투에서 항상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의 용기와 헌신은 신라를 삼국의 패자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유신과 화랑들은 신라의 통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고, 그들의 상무정신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화랑들은 단순한 전사들이 아니다. 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바칠 각오를 했으며, 그들의 도덕적, 정신적 완성은 신라가 강대국으로 자리잡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들의 상무정신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헌신과 용기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신라시대의 중흥을 이끈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년~576년)은 신라의 제24대 왕으로, 신라의 영토 확장과 국력 강화를 이끈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를 차례로 정복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신라의 국토를 크게 넓혔다. 또한 진흥왕은 화랑도를 조직하여 청년들의 군사적 훈련을 강화하고, 신라의 상무정신을 고취시켰다. 그의 통치 아래 신라는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한편, 신라시대에 상무정신이 가장 강했던 시기는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년~681년) 때이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완수한 왕으로, 그의 치세 동안 신라는 당나라와 협력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고,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었다.
《삼국사기》신라본기 문무왕 조에는 “王躬帥諸將 討殄百濟… 遂滅之 - 왕이 친히 여러 장수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여… 마침내 이를 멸망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문무왕이 직접 군사작전을 지휘하여 백제를 정복한 것을 나타내며, 신라의 상무정신을 잘 보여준다.

화랑대 (1966년 9월 육군사관학교 화랑 연병장에 준공된 사열대)

특히 신라 화랑들의 헌신과 용기 본받아야

삼국시대의 상무정신은 단순한 군사적 용맹을 넘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과 도덕적 책임의 상징이었다.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싸울아비, 신라의 화랑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나라를 지키고, 후세에 가슴 뜨거운 감동을 남겼다.
특히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신라의 진흥왕, 문무왕 시기에는 강력한 상무정신이 나라를 수호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왕들은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용맹하게 싸웠으며, 그들의 지도 아래 민족적 자긍심과 단결이 고취되었다.
특히 신라의 화랑들이 국가를 위해 바친 헌신과 용기를 본받아, 우리는 한반도를 자유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하나로 통일하고, 전 세계에 존경받는 강대국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우리는 오늘날의 도전과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협력하여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길이 비록 험난하고 도전적일지라도, 우리는 신라 화랑의 정신을 본받아 통일된 한반도를 이루고 자유민주주의 강대국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육군사관학교는 화랑 연병장의 사열대 명칭을 ‘화랑대’라고 칭하여 화랑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삼국시대와는 그 양태가 다르지만, 그 본질은 같다. 한반도의 통일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는 여전히 우리의 주요 과제이며, 이를 위해서는 신라 화랑이 보여준 상무정신을 되새기고 본받을 필요가 있다. 화랑들의 정신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통일된 자유민주주의 강대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칠주 편집위원
정치학 박사, KMA역사포럼 회장,
민주평통자문위원

국민희망저널 2024년 9월호 (제16호) 상무정신(2) | 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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