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초대석] 곽영훈 세계시민기구 회장 “50여년 우리나라 성장을 위해 최선의 정성을 다했습니다”

“ What can you do for the world?”
글로벌 정책건축설계사로 지난 50년 곽영훈 대표가 이루어 낸 성과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88올림픽, 대전엑스포, 여수엑스포, 평창동계 올림픽 계획은 물론, 대학로, 일산신도시, 지하철,신공항 등등 곽대표가 계획한 이벤트와 장소들은 우리나라의 발전과 성장을 견인해 왔다. 미국, 홍콩, 일본, 유럽 등의 도시개발계획까지 한국과 세계의 경계없이 달려온 곽대표의 활약과 신념을 들어보았다.

정해훈 편집위원 승인 2024.08.13 19:01 의견 0

UN한국 협회 곽영훈 회장. 세계시민기구 WCO 대표, 사람과 환경그룹 회장, 대한적십자사 RCY총동문회 회장, Silk Road Cities Federation, Urumgi, China 주석, UN 한국협회 회장, WCO Silk Road Mayors Forum 조직위원장이며, 2012년 여수엑스포 유치위원장을 역임했다.



Q1 곽영훈 회장님의 80년 인생 역정은 웬만한 수식어로는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세계적 정책건축설계사이고 직접적 정치일선에서도 할동하셨는데요, 먼저 간단한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6, 70년대에 저는 MIT(메사츄세츠)공대에서 건축학과 도시계획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책학 공부를 마쳤습니다. 졸업 후 당시 최고의 조경회사 SDDA에서 근무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안 1964년 뉴욕의 브루클린 Far Rockaway 세계박람회(World’s Fair) 를 구경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 조국 한국에서도 이런 박람회를 하게 되면 한국 사람들도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나라발전의 촉매제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인 1964년 도쿄 올림픽을 보면서 ‘올림픽 개최가 낙후되고, 위축된 한국이미지에 놀라운 국가발전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전략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글로벌 이벤트인 1988 서울 올림픽과 1993 대전 엑스포, 2012 여수 엑스포의 밑그림은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구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2018 평창동계올림픽도 제가 유치계획을 세웠습니다. 1968년 프랑스 그로노블 동계올림픽을 보고 대관령 근처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해 보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때를 대비한 인프라 구축을 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지내며 유학시절에도 가까웠던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에게 대관령 근처에 스키 리조트를 만들어 겨울 스포츠 대중화를 해보자고 제의 했었습니다. 정치에 관해서는 차차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대중 야당 총재 찾아 올림픽 유치 협조 요청

(질문자) 앞서, 질문에서 웬만한 것은 이미 말씀해 주셨습니다만, 2021년 출간하신 공저 『한강의 기적, 그 꿈의 대장정』을 일독하면서, 서울 올림픽을 비롯해 대전 엑스포 여수세계박람회 등 엄청난 국가프로제트의 기안 및 추진책임자로 역할을 수행하신 것에 놀랐습니다.

Q2 이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예를 들면 88서울 올림픽 때 어떤 숨은 이야기라도…


그 책의 공저자 김광수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신 분이시고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바바라를 나오신 분인데 좀 안타까우셨기도 했지만 이분이 진짜 샤프하신 분 같아요. 저하고 인터뷰를 한 번 해 본 다음 제가 쓰질 못하니까 안타까워 자기하고 대담집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김광수 교수님이 쓴 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88올림픽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물론 있습니다.


88올림픽 1년 전, 87년에 국내 정치가 너무나 어수선했어요. 그래서 IOC에서 올림픽을 못한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국내정치 안정과 IOC의 인정을 받기위해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 총재를 만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브래들리라는 LA 시장이 공식적으로 88년 서울에서 못하면 자기들이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김대중 총재께 내가 가서 부탁을 해야 되겠다. 데모를 좀 막아달라고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딱 포인트를 애기했지요. 올림픽의 시작은 제가 했어요. 제가 64년에 뉴욕에서 엑스포를 하는 것을 보고 엑스포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고 이때에 올림픽을 구상 했습니다. 이게 지금 마지막이거든요, 그래서 김총재님께 제가 생각하기에는 올림픽을 하게 되면 오히려 정권연장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왜 전 세계가 보고 있고, 그러니 ‘제 말을 믿어 주십시오.’ 끈질기게 요구 해, 여기에서 절대 동의를 받았어요.

Q3 이밖에도, 1970년대에 ‘사람과 환경그룹’을 설립하셔서 대한민국 국가발전 정책과 계획을 최 일선에서 직접 진두지휘하셨던데요?


국내 프로젝트로는 당시 서울시의 최초 도시기본계획을 시작으로, 88서울 올림픽 공원 마스터플랜, 올림픽 공원 내 ‘영원한 평화의 불 틀’ 조각물 설계 및 제작 우리나라 지하철 건설의 시작인 서울지하철 2, 3, 9호선 기본계획 등이 있지요. 그 결과 한강을 중심에 두고 강남개발이 촉진되고, 오늘 서울 모습의 골격을 이룬 겁니다. 또 한강종합개획 및 88올림픽대로 계획, 특히 대학로 도시설계로 우리나라 케이 컬처(K-Culture) 의 본산을 이루게 되었지요. 서울 외곽 신도시의 시작인 일산지구 도시설계 및 실시설계를 하였고 이를 계기로 킨텍스(KINTEX)와 출판단지 등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엑스포 마스터플랜을 하면서 대덕 연구단지와 카이스트(KAIST)가 생겼고 유성구 진잠지구를 한밭도시의 골격으로 삼았고, 영종도 신공항과 주변지역 개발을 통해서 동북아의 허브 공항으로 자리매김하게 하고, 훗날 동북아는 물론 세계 시민이 어울려 사는 평화의 세계시 계획을 입안 했습니다. 제주도 종합개발계획과 제주도 자유시 계획을 통해 IUCN(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세계자연보전연맹총회)를 유치하고 자연 보전의 시금석이 되도록 했습니다. 이 밖에도 DMZ UN평화시 계획 등등까지 전국 곳곳의 도시계획과 마스터플랜(기본계획) 에 참여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주 Napa City, 매사추세츠주 Fall River City를 비롯해 홍콩, 일본, 오스트리아의 도시 및 지역 종합개발에 참여했습니다. 또 필리핀 수빅만(Subic Bay), 이집트 시나이(Sinai) 과학문명도시, 나이지리아, 알제리, 이란, 가나, 네팔 등의 테마도시 건설계획에 설계 및 마스터플랜 등으로 대한민국의 해외 원조사업에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서울 지하철 2,3,9호선 설계

Q4 곽영훈회장님께서는 위에서 말씀한 글로벌 이벤트 이외도 수많은 건설 계획을 주도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2년 여수 엑스포 유치위원장 같이 직접적으로 활동한 것 외에는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일반인들은 특정 개발계획이나 건축물 설립에 있어서 직접 건축한 건축가나 결정한 행정가들 그리고 당시 대통령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공원의 문은, 김중업 작품, 올림픽 주경기장은 김수근 작품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를 건설하는 등의 각 인프라를 건설할 때는 보통 여러 단계를 거쳐서 실행됩니다. 첫째는 기본 구상입니다. 흔히 컨셉을 잡는 단계이며 개략적으로 어떤 도시를 어떤 인프라로 만들 것인지 계획하는 단계입니다.
이어 설계입니다. 개략적인 구성을 구체화 하여 설계도를 그립니다. 그 개발계획의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는 단계로 기본이 되는 계획과 설계단계입니다. 그 후 실시 설계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공사에 필요한 도면을 만드는 단계이고 건설 및 감리 단계입니다 .


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인 정책계획을 세우는 일을 하면서 개략적인 설계도까지 만드는 일을 주로 해 왔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설계를 한 건설계획을 제가 실제로 시행하며 경제적 이득을 보는 것은 나의 도덕적 가치에 맞지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몇몇 예외적인 일은 있습니다. 서울지하철 2, 3, 9호선을 제가 설계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은 기존 경부선의 서울역과 기존 중앙선의 청량리역을 지하로 단순히 이은 노선을 명명한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지하철개념의 1호는 현재의 2호선 입니다.

Q5 특히 반기문 UN 총장님과는 케네디 대통령을 함께 만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숨어 있는 뒷얘기를 소개해 주시지요.


경기고에서 학생회 의장을 했는데 그 때 적십자에서 한국의 대표를 뽑아 미국에 가는 거예요. 당시 미국 대통령이 케네디인데, 전 세계에서 남자 여자 2명씩 초청하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경기고, 경기여고, 충주고, 경남여고로 해서 남자 2명 여자 2명이 된겁니다. 그 때 또 제가 케네디를 만날 때 전 세계의 대표가 됐습니다. 그 때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충주고 대표로 함께 간 것입니다. 엄청난 우연과 인연이 있었던 것이지요.

한국 태권도의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

Q6 또 태권도에도 조예가 깊고 일찍부터 한국태권도의 세계화를 개척해 오신 선구자로 알고 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서울 견지동에 청도관이라고 있었어요. 집에서도 가깝고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러 다녔죠. 그때 연이 되어서 지금까지 열심히 배우고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있죠. 그러니까 10살부터 태권도를 했습니다. 인연이라기보다는 저의 삶이예요.
특히 좋은 후배들을 많이 만났어요. 해외에서 만난 후배들은 거의 희생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범님들이 너무나도 고맙더라고요. 국가 뿐아니라 지역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와 하버드대 유학 시절에는 체육관에 태권도 클럽을 만들어 세계적인 수재들을 직접 지도했습니다. 1960년대 초 한국학생이 일본 또는 중국 사람으로 인식되었던 시기였는데 태권도로 한국을 알린 것입니다.

Q7 청도관과 또 지금 WTF라고 해서 셰계 태권도 연맹 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좀 같이 어울려서 뭔가 태권도의 발전에 기여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지금까지 태권도를 배운 60년 세월의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이 아무것도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무역의 수출과 수입을 다 합친 총량을 보면 세계 5위에요. 굉장하죠. 우리는 자원도 없는 나라가 그렇게 되었어요. 놀라운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나는 나라를 위해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어야 하겠는가를 태권도 정신으로 기도하고 집중력을 가지고 한 거죠. 예로 서울에 올림픽을 해야겠다고 제가 시작한 거거든요. 태권도가 시작한 거지요. 대전에서 엑스포를 하는데 거기에서는 과학기술을 기본개념으로 가지고 한 것입니다. 서울 올림픽은 이념의 벽을 허무는 것으로 해야 되겠다, 그래야 우리가 카자흐스탄도 가고, 러시아도 가고 할 것 아니겠어요. 저는 WTF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곽영훈 회장과 정해훈 편집위원

Q8 마지막으로 회장님께서는 WCO(세계시민기구)를 창설하셨고 지금도 매년 SRMF(실크로드 세계시장포럼) 의장으로 활동하시는데 압축해 소개해 주신다면?


1988년 ‘서울 올림픽 평화운동’, ‘2012 여수 엑스포’를 개최 했고 그 후 매년 ‘Silk Road Mayors Forum’주최 등 평화 만들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2015년 중국정부가 신장성 우루무치에 본부를 둔 Silk Road Cities Federation에서는 주석으로 선출이 되었습니다. 이 Federation의 회원도시 인구수를 합치면 약 35억으로 세계인구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엄청난 조직입니다. 이밖에도 저는 DMZ 평화도시를 ‘A.P.P.L.E.’란 융합의 결실로 드러냈습니다. ‘A.P.P.L.E’로 ‘APPLE’ 이상의 시너지를 발현하며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성장을 위해 최선의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슬기와 지혜로 통과하고, 여전히 사람과 세상을 위해 국내와 세계의 경계 없이 세계시민과 더불어 철학과 신념에 따라 활동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인터뷰 | 정해훈 편집위원

국민희망저널 2024년 8월호 (제15호) 특별초대석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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