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갤러리] 박태병 작가 '거침없는 붓질의 단호한 자취'
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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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02:01 | 최종 수정 2024.06.26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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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인 이미지와 이야기가 얽힌 비결정성의 지대
박태병의 화면은 물감 자체의 흐름과 질감의 풍성함이 이룬 희한한 표정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캔버스 피부 위에서 이루어지는 특유의 표면 효과만으로 모종의 회화성을 충족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횡으로 거침없는 붓질이 문질러나간 단호한 자취가 인상적이다. 여기서 마치 혁필화에서 접하는 선의 기세와 물감의 유동적인 흐름을 만난다.
힘차게 그어나가 한 획에 여러 색들이 연속적으로 물결무늬를 짓고 파동치면서 글자와 그림을 동시에 안겨주는 혁필화의 기세나 흐름이 얼핏 연상시킨다. 수평으로 내달리는 붓질 사이로 뭉개지고 풀어지는 물감의 유동적인 떨림이 가득하고 한편으로는 각 내부를 촘촘히 채우고 분절시키는 색면 내지 여러 효과를 동원해 마감하고 성형해나가는 다양한 흔적들이 또한 화면을 힘 있게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사각형의 화면을 우선적으로 환상적인 색채, 특이한 물감의 물질적 상황으로 이루어진 피부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짓는 여러 표정, 사태를 연출해내는 작가 신체의 힘의 강도와 속도, 행위와 시간 역시 고스란히 축적되어 밀고 올라오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은 표면의 속도감 있는 붓질의 속력과 감각기관에 전달되는 강도의 차이로 인해 형성된 여러 표정을 짓고 있다. 그것이 일반적인 그림과는 다른 표면, 얼굴, 그리고 낯선 스타일을 드러낸다.
그린다기보다는 물감을 통한 질료적 표정을 우선적으로 성형하는 일이고 작가 자신의 몸으로 축적된 몸의 감각의 떨림을 물감의 살로 으깨놓는 일이자 번져 내는 일이 박태병의 그림이다. 🅿
평론 |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국민희망저널 2024. 06 (제13호) 희망갤러리 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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